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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지리산은 국립공원1호로, 전북 남원, 구례, 경남 산청, 하동,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로 검색해서 많이 들어온다. 그 만큼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빨치산, 호랑이, 기타 숨어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자 한다.
2-1 대호 이야기
호랑이는 산군, 대호 또는 산신령으로 불렸다.
과거에는 지리산, 설악산, 가야산에서 서식했으며, 조선 왕, 청에 조공 그리고 일본에 화납품등 명목으로 매년 100여마리는 살해되었다.
호랑이를 잡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상금과 정2품~3품에 해당하는 착호장이라는 제도를 두었다. 이는 호랑이를 잡는 일은 "로또"를 맞는 일과 같았던 것이다.
또한, 1900년초에는 외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호랑이 사냥을 즐긴 자료가 발견 되었다. 목포의 양을산, 진도 섬에서 호랑이가 잡힌 사례가 있다.
개체수는 임진왜란을 계기로 감소하다 한반도에서 종적을 감췄으나, 호랑이를 봤다는 카더라는 많고, 예전 티비에서 호랑이 추적을 하는 프로그램을 했었다.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사례는
1921년 07월 16일 경남 산청군 금서면 삼장면에 호랑이가 나타나 가축들을 해한다는 소식을 들은 포수 김성진씨와 그의 동생이 지리산 중턱에 잠복하고 있었다.
그의 동생이 오줌 싸다, 호랑이가 소 한마리를 먹고 있는 걸 발견 한 후, 끈질긴 추적 끝에 잡았다.
그 당시 기록을 보면 무게가 350kg이 넘고, 당시 돈으로 500원에 팔렸다.
대충 1920년 당시 조선인 경찰 월급이 28원 20전, 일본인 경찰은 56원 50전, 쌀 좋은거 한 말 2원20전, 소고기 한근에 45전으로 미루어 보면 어마무시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잡힌 것은 1921년 경주 대덕산이며, 가죽을 일본 황족에게 헌상했다.
<사진출처: 엔도 키미오 제공>
라고 나와있지만, 좀 더 살 펴보면 추석을 앞두고 산에 나무하러 간 김유근씨(1980년대까지 살아계셨음)가 호랑이에게 공격을 당했다. 마침 일본 왕실의 귀족이 경주를 방문할 예정이었기에 미야케 순사는 수백명을 몰이꾼으로 동원해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당시 호랑이 길이는 2.5m 체중 153km였다.
1960년대에는 경남 합천 가야산 일대에서 표범이 잡혀 창경원으로 옮겨진 적도 있다.
2-2 빨치산과 지리산
"남부군"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안성기(이태)씨가 조선 중앙 통신사의 종군 기자로 파견 근무하다 유격대에 합류하게 되고, 그 후에 남부군에 개편되면서 겪은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남부군은 이현상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 좌익 빨치산 부대이다.
간략하게 이현상을 소개하자면, 해방이 되면서 박헌영과 함께 조선공산당 재건에 참여를 했고, 그 이후 남로당으로 개편되고 나서 연락부장 같은 직책을 맡게 된다.
한국에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 되자 박헌영과 함께 평양으로 갔지만, 북한의 결정에 따라 지리산으로 들어가 5년동안 빨치산 투쟁을 시작했다.
지리산 속에서 한국전쟁을 맞이한 그는 이후에 낙동강 전선에서 교란 작전을 펴기도 했으나 패퇴하자 소백산- 속리산-민주지산을 거쳐 덕유산에 이르게 된다.
51년 7월 남한 빨치산의 공식적인 총수가 되고, 53년 휴전이 되면서 지리산 빗점골에서 토벌대에 의해 사살 된다.
지리산지구 빨치산 토벌 전에서 있었던 교전 회수는 약 1만 회, 빨치산 합계 약 2만여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 생존자 중 한명인 이태(안성기)씨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의 명령으로 경남으로 가던 이현상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2-3 지리산에 빨치산 비트가 있다?
이현상을 얘기하면 박영발을 빼놓을 수 없다.
이현상은 평양 지도부로 부터 직접적인 명령을 하달 받고, 빨치산을 통합해 거대한 전선을 구축하길 원했다.
그러나 박영발은 소규모로 분산해서 활동하길 원했고, 이현상 밑으로 들어가고 싶질 않아서 다툼이 있었다.
1953년 5월 토벌대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동굴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고, 당시 주치의였던 사람이 같이 생활했던 무전사, 비서, 박영발을 카빈총으로 난사해 박영발과 무전사는 즉사했고, 당시 비서였던 이정례씨는 수류탄을 던져 주치의를 처치했다.
이후 총상과 수류탄 폭발로 입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날 식량을 전달하러 온 대원을 만나 구사일생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박영발이란 존재는 사라졌다.
88올림픽 IMF를 지나 2002년 월드컵 그리고 연평해전을 거쳐 두둥!
60여년이 지난 2005년 2월 한 비전향장기수(사상전향을 거부한채 장기복역한 인민군 포로나 남파간첩)의 안내로 박영발 비트가 세상에 드러났다.
<사진출처:https://t1.daumcdn.net/cfile/blog/2236A6475768FAA713>
외부에서 보면 영락없는 동물이 사는 굴 같은 느낌이지만, 그 안에 내부는 성인 4명이 들어가고도 남고, 밖으로 나올 때는 사다리를 이용해야 할 만큼 높다.
발견 당시 삐삐선, 무전기, 배터리, 등이 발견 됐고 이 동굴에서 4개월을 생활했다고 한다.
왜 60여년이란 세월동안 함구했는진 알 수는 없지만, 참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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