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숨겨진 이야기②
3 노고단에는 삼한시대의 역사가
노고단은 태백산, 토함산, 계룡산, 팔공산 등과 함께 나라의 대사를 지낸 신라오악 중 하나로,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의 제사를 지냈으며, 선도성모를 지리산 "신"인 노고라 칭하면서 제단을 쌓고,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하여 노고단이라 한다.
이 곳은 세석과 함께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했던 수련장이기도 하고, 앞에서 본 것 처럼 빨치산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성삼재는 삼한시대의 유적지로, 마한 때 성이 다른 세사람의 장수를 시켜 지키게했다해서 이름이 붙어졌고, 진한군에 밀려 지리산에 숨어들어온 마한왕조는 성삼재너머 궁을 짓고 길목마다 8명의 장수를 시켜 지키게 했다는 연유로 팔령치, 정장군으로 하여금 방어망을 구축하게 했다는 정령치 등의 이름도 마한의 역사에서 유래됐다.
노고단에 외국인 선교사가 살았다?
<사진 출처: 지리산기독교선교사유적지보존연합>
조선에 들어온 유진벨 같은 선교사들은 지금 광주기독병원인 전신인 제중병원, 수피아여고, 목포에 정명 영흥학교등을 세웠으나 풍토병 등과 같은 이유로 선교사들이 죽어나가자 선교기관은 철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외국인 선교사들은 이 지리산 일대를 피난처 형태로 총독부와 교섭하여 사용하였고, 여순사건이 터지면서 김지회 일당이 이 곳을 반야봉과 더불어 빨치산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후, 국군토벌대와 싸움에서 산장과 수목들도 함께 불에 타버렸다.
이 곳에 정착했던 선교사들은 강제 추방사건 그리고 6.25를 거쳐 1962년 왕시루봉에 있는 서울대 학술림 안에 선교사들이 기거할 수 있게 됐다.
원래 관리 책임자였던 휴 린튼 선교사는 순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광주로 응급후송되던 중 구급차안에서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구급차를 설계하고 제작한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그의 아들 "존 린튼" 한국이름 인요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외국인진료소장이고, 그의 어머니 로이스 린튼은 한국의 결핵퇴치를 위해 35년간 노력했고, 둘째 아들은 유진벨 비영리 단체를 설립해 북한의 결핵 퇴치를 힘쓰고 있다.
현재 이곳은 보존vs철거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곳이지만, 비법정탐방로임에도 많은 지리산꾼들이 찾는 곳이다.
4. 들었는봤나 청학연못?
오른쪽 그림은 80년대 세석평전에서 텐트를 치며 야영을 했던 모습이다. 지금과는 사뭇다르다.
6.25당시 빨치산의 주요 활동 근거지인 이유로 벽소령에서 천왕봉사이에 6개의 헬기장과 개인 참호와 벙커가 있었고, 군진지 공사가 한창이었던 곳이다.
이런 공사를 국립공단과 환경부에서 허가를 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아무튼, 촛대봉 근처에는 청학연못이 있다
그 곳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청학은 여러 문헌에서 존재하듯 하나의 이상향 정도 인 것 같다.
신선이 청학을 타고 옥으로 만든 피리를 불며 하늘로 올라갔다느니 하는 썰은 존재하니 말이다.
내가 이 곳을 안 것은 우연찮게 울산mbc에서 방영한 지리산 산행을 보다가 "청학연못"을 들었다.
<사진출처:http://tv.knps.or.kr/ 국립공원>
<사진출처:http://pds10.egloos.com/pds/200810/03/11/d0002011_48e5fa56e504d.jpg>
그 산행을 리딩하시는 여자분이 칭찬했던 곳이 여기였다. 신이 나서 검색해보니 그렇다 비법정탐방로였다.
아름답고 스토리가 있는 곳은 왜 죄다 비법정탐방로인가? 라는 아쉬움이 든다.
5. 천왕봉 표지석에 숨은 지역감정
정상석 뒷 부분은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현되다"라고 되어있다.
지금과는 다르게, 옆에있는 돌은 71년 충남 홍성에서 가져왔다.
앞에는 천왕봉, 위에는 동서남북을 그리고 뒷면에는 萬古天王峯(만고천왕봉) 天嗚猶不嗚(천오유불오)을 새겨놓았다.
아주 옜날부터 천왕봉은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왕봉은 울지 않았으나 일부 등산객들이 이 비석에 자기 이름과 등반 날짜를 새기고 모서리를 마구 찍는 행위로 비석은 울었을 것이다.
81년에는 길이가 2m정도 폭이70cm 산청군이 새겨진 천왕봉 표지석을 세웠으나 다른 도시의 반발로 철거됐다.
산청군이 안되면, 경남도인은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이후에 세워진, 그러니깐 지금 보는 정삭석은 83년도만 해도 뒷면은 "한국인"이 아닌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새겨져 있었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중산리 국립공원 구역 안이라는 이유로 어느 도지사가 세워버렸다. 이에 지역 감정을 유발한다고 느낀 젊은이들이 천왕봉에 올라 이 정상석을 계곡으로 굴려버리려 했다.
경남인이라고 쓰인 글귀가 못 마땅해 공원감시원의 눈을 피해 경남인을 지우고 85년도에 한국인으로 새겨놓았지만10여년동안 글자 따먹기를 해왔다.
<95년> <97년>
95년에도 있었던 "한"이란 글자는 누가 꼴보기 싫었는지 97년에는 아예 갈아버렸고, 이 후에 정상석을 다듬어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이 아닌가 싶다.
6. 나가기
참 그렇다. 돌하나에도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아흔아홉골에는 얼마나 더 많은 얘기들이 숨어 있을까?